야호 책 it 수다 , 미래가 과거에 내미는 최초의 악수

미래가 과거에 내미는 최초의 악수

[김명식,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를 읽고]

평균 기온 27.2도 오전에 구름이 약간 끼었으나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이 있은 오후 3시 무렵부터는 쾌청하였다. 1945년 8월 15일의 날씨다. 그로부터 5일 뒤, 새벽 전남 완도군 청산도 앞바다를 지나는 선박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118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아들을 두고, 딸을 두고. 때론 농투성이 흙 묻은 짚신을 탈탈 털고 바지적삼을 종아리까지 말아 올려놓고 마루에 대자로 누워 잠을 청하는게 일상이었던 평범한 아버지였을 것이다. 3월 하순 제주도 서귀포 갱도진지 건설 등 일본군 군사시설 구축에 강제 동원 됐던 해남 사람이 국가의 해방 후 맞이한 첫 번째 참변이었다.

해남에서는 이를 기려 합동 제사일인 9월 6일을 맞아 조형물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조형물의 건축은 무엇이어야 하고 또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건축가 김명식은 이탈리아에서 도시 건축을 공부하고 이후, ‘사회적 고통과 기억의 공간’을 시민과 함께 공부하고 답사한 뒤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세월호 추모관까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건축은 기록되어 있는 언어라 말하는 저자의 서술에 공감한다.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일까. 아니면 선한것일까. 이것에 대한 탐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적 메시지로 여전히 유효한 질문일 것이다. 한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 중 한명으로 평가 받은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한 두 건물이 나온다. 하나는 남영동 대공분실이고, 다른 하나는 경동교회이다.

역사는 늘 역설을 머금고 피를 마시며 자라는 듯 하다.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과거 박종철군이 고문 끝에 사망한 곳이며, 현재는 그를 기리는 여러 추모의 물품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공간의 탈바꿈이 민주화를 상징하는가는 재차 물어볼 질문이다. 민주화는 공동체를 염원하면서 철저히 개인의 의식이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는 개개의 위로가 먼저야 하고, 그것의 대안이 마련되고 문제 발생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건축에는 사회적 합의가 미비하다.

서울시청의 옛 건물인 서울도서관에 위치한 서울 기록문화관을 최근에 휴가차 다녀왔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공간의 연대기적 구성표였다. 효순이 미순이 사건부터 최근의 세월호까지 역사를 자랑하는(?) 표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여기에서 내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서술이 책에는 단 한 줄로 요약되어 있었다.

부끄러움을 기반으로 통제하는 사회냐, 아니면 죄의식으로 통제하는 사회냐에 따라 슬픔과 분노를 다루는 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230p)

부끄러움은 익명속에 대중에게 잊혀짐을 강요한다. 반면에 죄의식은 독일처럼 사건을 숨길 수 없고 그 문제는 내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해야 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연대표는 추모하는 것이 아닌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소모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공간은 여기에서 저기까지 틀을 재단하는 도구가 아니다. 밖에서 안으로, 혹은 안에서 밖으로 열려 있는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기억의 건축은 파놉티콘 같은 억압과 감시 혹은 권위의 구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옥매 광산 광부의 조형물이 들어서는 시점에, 약간은 즐겁고 호기롭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씁쓸하다. 책을 덮으면서 드는 물음이 있다. 수많은 죽음의 이력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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